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문득 학습단계론이 떠올랐다. 경제학 시험을 보고 난 이후에 구상이 되었는데 이론적 메커니즘(수학 공식, 도식 등)을 여러 버튼이 달린 강아지 장난감이라고 가정하면 0단계: 뭐가 뭘 작동시키는지 모르기 때문에 막 눌러본다. 보통 시험에서 그림을 그리고 장렬하게 C+를 맞고 나오는 단계 1단계: 어떤 버튼들의 조합이 어떤 동작을 야기하는지 기본적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왜 그 조합이 특정 동작을 야기하는지 아직 모르기 때문에 모델의 가정을 바꾸거나 응용동작을 요구하면 바로 멘붕에 빠지는 단계 2단계: 어떤 버튼들의 조합이 어떤 동작을 야기하는지 알고 있을 뿐더러 왜 그 조합이 특정동작을 야기하는지 알고 있다. 시험장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는 단계 3-1단계: 강아지 장난감과 현..
사람들은 신을 추구하는 것을 맹종과 비합리성으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있는가 하면, 진리에 대한 추구는 상당히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는 근현대에 진리라는 개념이 '과학적 진리'와 동치로 사용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데 사실 진리는 상당히 신학적인 개념이다(일례로 성경의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구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신이 완전하고 불변적이고 유일한것처럼 진리도 완전하고 불변적이며 유일하다. 우리는 진리(과학적 진리)에 대한 추구를 마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무척이나 종교적인 것임을(즉 일종의 신념임을) 나는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인간의 태초적 불안정성과 유한함으로부터 기인되는 불안은 인간으로 하여금 완전하고 불변인 존재를 추구하도록 하는데, ..
요즘 통학을 하다보니 버스안에서 별별 생각을 다하게 된다. 한남대교 위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내가 지금 지각하는 세상이 전부일까'라는 생각부터 시작해서 버스가 세브란스 암병원을 지나갈 때에는 내가 늙어서 암센터 병동에서 죽어가는 모습이 겹치고...하여튼 온갖 생각을 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너무 좋다. 분주하게 살면서 사실 진정으로 '사유'할 수 있는 순간들은 몇 없었던 것 같다. 참 신기한게 군대에서도 그렇게 시간이 많았는데 진정으로 '사유'한 적은 많이 없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에겐 물리적 억압이 정신적 억압으로 이어졌다. 다시 학교로 돌아와 도서관에서 동기들이랑 공부하고 백양로를 걸으며, 수업시간에 교수님께 질문하고 논쟁하면서 묵혀있던 사유가 다시 깨어난 기분이다. 이번 글도 이러한 배경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