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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지 않은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다. 오직 배우기만 하고 표현하고 비판하지 않는다면 내가 가진 생각은 전부 교조화될 것이다. 따라서 짧게나마 글을 작성하려고 한다. 

 

상호작용(interaction)은 사회과학의 핵심이다. 모든 흥미로운 사회적 현상들은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지점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수많은 인간들로 구성된 사회에서 존재하는 개별 인간은 타인으로부터의 인과율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좋든 싫든 우리를 추동하는 행동과 생각은 대부분 타인으로부터 비롯된다.

 

상호작용을 서로가 서로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주는 현상이라고 정의한다면, 사회를 분석하는 문제는 무척이나 어려워진다. 끝없는 인과의 사슬과, 개인과 개인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창발성을 분석하려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머리가 아파진다. 따라서 전통적으로, 사회과학은 개인을 과감히 생략하고, 사회 전체를 분석하는 방법론을 채택했다. 사회현상의 동인은 개별자의 행동이 집합되어 추동되는 것이 아니라, 집단(예: 프롤레타리아, 노예, 흑인 여성 등)의 행동이다. 즉, 개별자의 무수한 특성을 사상하고, 사회가 여러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고, 그 집단의 흥망성쇠에 의해 사회의 방향성이 결정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반면, 경제학은 여타 사회과학과 완전히 다른 방법론을 채택하였다. 경제학이 채택한 방법론적 개인주의란, 개인을 타인과 독립된 주체로 여기고, 분석의 시작점을 집단 혹은 사회가 아닌 개인에 두었다. 이는 경제학이 물리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경제학에서 사용되는 '균형', '정상 상태' 등의 개념은 모두 물리학에서 이미 사용하고 있던 개념이다. 경제학에서 사회는 개인의 단순한 합이며, 창발성과 같은 특성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물리학이 이전의 고전물리학적 패러다임을 넘어서 복잡계 등 고도의 상호작용이 발생하는 세계를 상정하고 모델링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였을 때, 경제학의 주류가 아직도 방법론적 개인주의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은, 적어도 내게는 시대착오적이라고 보여진다. 

 

이처럼 독립적인 개인을 상정하는 이론의 가장 큰 장점은 모델링을 하기가 무척 편하다는 것이다. 개인간의 상호작용을 고려할 필요가 없으므로, 각 개인의 효용함수를 모델링하고, 주어진 외생변수(외부적 조건을 의미한다)를 적용하여, 개인의 소비량, 생산량 등을 산출해낸다음, 이를 모두 더하면 시장 균형을 도출할 수 있다. 통계학도 비슷한 맥락에서, 확률변수들간의 독립성을 상정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T분포, F분포 등은 모두 독립성을 가정한 분포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인간은 서로 독립적이지 않다. 따라서 경제학이 원자화된 인간을 가정하는 것이 이론 구축에 있어 수학적으로 수월할진 모르나, 그 과정에서 현실에 대한 설명력을 어느정도 포기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경제학에서도 20세기 중반을 기점으로 게임이론이 등장하였다. 이제 개인은 타인의 선택지를 고려하면서 선택을 내리는 존재이다. 그러나 게임이론도 해를 도출하기 위해 여러 가정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합리성의 공통 지식(common knowledge of rationality)란 플레이어1이 합리적이란 사실을 플레이어 2가 알고, 또 이 사실을 플레이어 1도 안다는 것이다. 이는 대칭적으로도 성립해야 하며, 만약 플레이어가 n명이라면 n명 모두에게 성립해야한다. 물론 이는 비합리적인 가정이기 때문에, 보다 고급이론에서는 이러한 가정을 완화하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이 상대방과의 게임에서 보수구조를 인식하고 이에 기반해 복잡한 계산을 하여 자신의 최적 전략을 찾는다는 가정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경제학은 합리성 가정을 어느 정도 버려야 한다. 물론 합리성을 가정하면 경제 현상을 수학적으로 아름답게 모델링 할 수 있다. 합리성을 가정하면 효용함수를 도출할 수 있으며, 게임이론에서 깔끔한 해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론이 현실과 맞닿아 있지 않다면 이는 수학적 자위(mathematical masturbation)와 다를바 없다.  수학은 언어일 뿐이다. 우리의 사고를 정교화하고 확장시켜주는 도구일뿐인 것이다. 경제학이 수학에 포섭된 현실속에서 경제학은 추상의 세계 속에서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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