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사회학

사회과학의 어려움

JM. 2018. 4. 8. 00:47

요즘 통학을 하다보니 버스안에서 별별 생각을 다하게 된다. 한남대교 위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내가 지금 지각하는 세상이 전부일까'라는 생각부터 시작해서 버스가 세브란스 암병원을 지나갈 때에는 내가 늙어서 암센터 병동에서 죽어가는 모습이 겹치고...하여튼 온갖 생각을 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너무 좋다. 분주하게 살면서 사실 진정으로 '사유'할 수 있는 순간들은 몇 없었던 것 같다. 참 신기한게 군대에서도 그렇게 시간이 많았는데 진정으로 '사유'한 적은 많이 없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에겐 물리적 억압이 정신적 억압으로 이어졌다. 다시 학교로 돌아와 도서관에서 동기들이랑 공부하고 백양로를 걸으며, 수업시간에 교수님께 질문하고 논쟁하면서 묵혀있던 사유가 다시 깨어난 기분이다. 이번 글도 이러한 배경과 무관하지 않은 글이다. 정확히 1주일 전 굴다리 앞 보행신호를 기다리다 이 생각이 떠올랐는데, 오늘 드디어 시간이 나서 이 생각을 글로 남기고 공유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기쁘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다보면 몇 백년 이상 설명력을 유지해온 이론을 찾아보기 정말 힘들다. 사회과학 자체가 하나의 독립적인 학문체계로서 존재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럴지 모르나 옆동네 자연과학의 이론들과 비교해보면 무척이나 초라하다. 한 예로 국제정치학의 주류적 이론틀인 현실주의는 구소련 붕괴 이후의 상황을 예측하고 분석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대안적 이론틀인 자유주의와 구성주의에 많은 지분을 넘겨주었다. 대표적인 현실주의학자인 왈츠의 경우 양극체제가 세력 균형을 통해 평화 유지에 가장 이상적인 체제라고 주장하고, 양극체제가 붕괴하는 순간 불안정성과 갈등이 빚어질 것이라 예상했으나 현실은 이와 다르게 진행되었던 것이다. 공산주의 혁명도 마르크스가 예견했던 것처럼 자본주의의 발달단계가 최고봉에 이른 미국이나 유럽국가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전근대적이였던 러시아에서 발생했던것도 아이러니하다. 


물론 자연과학도 흠결이 없는것은 아니다. 근대의 라플라스적인 보편적이고 확정적인 자연법칙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현대 물리과학의 발전, 특히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해 붕괴되었다. 또한 자연과학은 ceteris paribus적인 가정하에 두 변수 사이의 관계를 설명해 낼 수 있을 뿐이다. 아직도 물리학자들은 현실에서 탁구공을 던졌을 때 어디로 튈지 정확히 예측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자연과학이 부러운 점은 통제된 환경에서 진행되는 실험은 일관적인 결과가 항상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회과학은 그러지도 못하고 그럴 수도 없다. 


자기실현적 예언(self-fufilling prophecy)라고 들어보았는가? 자신이 예상한대로 실제로 실현된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외환위기가 찾아올것을 예상하면 외환위기로 인해 환율이 오를 것이라 예상해(외환보유고가 바닥나면 더 이상 환율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므로) 외환시장에서 원화를 팔고 외환을 사들임으로서 외환위기를 실제로 더 가속화 시킬 수 있다. 이처럼 실질변수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음에도 사람들의 예측만으로 어떠한 현상이 실현될 수 있다. 이런 '인간적' 요소들 때문에 사회과학에서 설명력 강한 이론을 찾아내기 어렵다. 경제학에서 루카스 곡선과 같이 사람들의 예측을 한 변수로 포함시키고자 한 시도가 있었으나 곡선이 가지는 정책적 함의는 차차하고 실질적으로 경제현상을 설명하는데에는 미흡하였다.  E.H Carr도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이 점을 지적하면서 ("The political scientist who... nourishes the conviction that despotism is short-lived, may contribute to the downfall of the despot) 사회과학자와 그의 데이터 사이의 상호작용은 지속적이며 가변적임을 강조한다. 어쩌면 사회과학에서 법칙을 찾아내는 것은 무용한 시도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사회과학적 법칙은 개별 인간들이 구성하는 법칙이며, 그 법칙은 개별 인간들에 의해 변화되고 소멸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약 사회과학 이론이 진정한 법칙이 되고자 한다면 그 이론이 사람들로 하여금 어떠한 반응을 유발할 지, 그리고 그 반응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반응을 유발할지, 그리고 그 반응은....를 그 변수로서 포함시켜야한다. 그러나 이건 마치 축구경기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는 것과 비슷한 시도여서(오히려 축구경기의 결과를 예측하는게 더 쉬울 수도 있다) 이는 AI가 발전해도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우리는 사회과학에서 중요한 변수들만 추려내서 그 '추이'를 살펴보는데 만족하고 있는데 이 또한 연구자의 특정한 패러다임적 사고나 관점에 기초하고 있어 무척이나 가변적이다.


축구경기도 그 결과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재미있듯이 우리가 직면하는 모든 사회현상도 완벽히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재미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법칙을 발견함을 통해 우리가 인간사회의 미래를 통제할 수 있게 되는것이 과연 바람직한지에 대한 의문도 생긴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를 속박하는 법칙이 존재한다면 그 법칙이 전제하는 근본조건들을 변화시킴으로서 우리 미래를 더 낫게 만들 수 있다면 법칙을 발견하려는 시도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사회과학은 양 극단 사이에서 시계추와 같이 움직일 수 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있지 않나 생각해본다.